[다시쓰는6·25전쟁] 격론

김병륜 기자

  • 입력: 2010.08.31 20:11:55 / 수정: 2010.08.31 20:11:55
  • 기 사

모두 반대한 인천상륙작전, 그러나 맥아더는 … 99% 반대에 1%만이 희망을 걸었다


당시 미 극동군총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 맥아더(왼쪽) 육군 원수와 상륙작전 반대 입장을 표명한 미 합참의장 오마 브래들리
(오른쪽 위부터) 육군대장·콜린스 육참총장·셔먼 해참총장.

1950년 당시의 인천항.
한반도의 역사와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꾼 작전, 20세기 최후의 대규모 상륙작전, 불법 남침으로 전쟁을 일으킨 북한군에 사형을 선고한 작전. 그 어떤 수식어로도 인천상륙작전의 특별함을 온전히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인천상륙작전이 더욱 극적인 이유는 또 있다. 상륙작전을 실행했을 때 거짓말처럼 작전이 쉽게 풀려나간 것과 달리 준비 과정에서 그 어떤 작전보다 논쟁이 심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인천상륙작전은 ‘모두가 반대한 작전’이었다. 상륙작전 성공에 확신을 가진 인물은 단 한 명, 미 극동군총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 맥아더 육군 원수 한 명뿐이었다.

 ▶ 작전의 뿌리

 맥아더 장군이 전쟁 초반부터 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을 궁리를 했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아직까지 명확하게 학문적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일각에서는 미군이 이미 1946년을 전후한 시점에 유사시 방어계획의 일환으로 인천을 염두에 둔 상륙작전 선행연구를 했다는 주장도 있다.

 맥아더는 1950년 6월 29일 한강방어선을 둘러 본 후 블루하트(Blue Heart) 계획을 구체화했다. 미 제24사단으로 북한군의 남진을 지연시키는 가운데 미 1기병사단을 7월 22일 인천에 상륙시켜 적을 격멸시킨다는 것이 골자였다. 하지만 북한의 진격 속도가 예상보다 너무 빨라 7월 10일 블루하트 계획은 취소됐다.

 이후에도 맥아더 장군은 상륙작전을 포기하지 않고 미 극동사령부 예하에 합동전략작전기획단(JPSOG)을 편성, 상륙작전을 계속 연구토록 했다. JPSOG는 7월 23일 미 육군2사단과 미 해병1여단을 9월 중순에 상륙작전에 투입하는 작전계획을 내놓았다.

 당시 연구한 계획은 세 가지였다. 100-B 계획은 인천, 100-C 계획은 군산, 100-D 계획은 동해안에 상륙하는 것이었다. 맥아더 장군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100-B 계획, 다시 말해 크로마이트(Chromite) 계획이었다.

 ▶ 동상이몽

 하지만 미 합참은 이 같은 맥아더 장군의 구상에 당황했다. 미 합참과 육·해군 수뇌가 보기에 인천상륙작전은 위험한 도박이었다. 당시 미 합참의장이었던 오마 브래들리 미 육군대장은 상륙작전 자체에 회의적이었다. 브래들리 장군은 핵무기가 운용되는 시대에 재래식 상륙전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위험한 작전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육군참모총장 러튼 콜린스 대장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더욱 문제는 상륙작전의 또다른 주역이 돼야 할 미 해군조차 인천상륙작전에 선뜻 찬성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해병대조차도 해군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었다.

 이처럼 합참을 비롯한 군 수뇌부가 인천상륙작전을 찬성하지 않았음에도, 그 누구하나 맥아더 장군에게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못했다. 직책상 브래들리와 콜린스 장군은 맥아더의 상관이었지만 군 경력으로는 맥아더 장군이 더 선임이었고, 계급 또한 원수였던 맥아더가 더 높았기 때문이다.

 극동군사령관 맥아더 원수는 이미 1930년대에 제13대 미 육참총장을 역임한 데 비해 합참의장 브래들리 대장은 48년에야 제17대 육참총장을 지냈다. 현직인 콜린스 육참총장은 제18대 총장이었다. 직책상 상관이면서도 군 경력과 계급은 낮은 문제 때문에 워싱턴의 미군 수뇌부는 맥아더 원수와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장장 20일 동안이나 합참은 회신을 보내지 못내고 고민을 거듭했다.

 ▶ 첫 대결

 이런 사정 때문에 워싱턴의 미군 수뇌부는 단순히 통신상의 명령이나 지시로 맥아더 장군의 주장에 반대하는 것보다 얼굴을 맞대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심했다. 이를 위해 육·해군 참모총장이 직접 맥아더를 만나기 위해 극동군사령부가 있는 일본의 도쿄로 날아갔다.

 8월 23일 오후 5시 도쿄의 극동군사령부에서 열린 회의에는 워싱턴에서 날아온 콜린스 육참총장, 셔먼 해참총장을 비롯해 해병대사령관, 극동군사령부의 주요 참모 등이 모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해군 측은 인천상륙작전의 문제점에 대해 1시간 넘게 브리핑했다. 인천항의 조수간만의 차는 세계에서 둘째로 높아 만조시에만 상륙이 가능했다. 그나마 만조시간도 한두 시간에 불과했다. 인천 외항으로 접근하는 수로도 폭이 1.8~2㎞에 불과해 여러 군함이 동시에 이용하기에는 비좁았고 이 지역 또한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 좌초 위험성이 높았다.

 또 인천항 입구에 있는 월미도를 먼저 제압해야 인천상륙작전이 가능한데 월미도 주변은 군함이 항해할 수 있는 면적이 좁아 구축함이 선회하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월미도에 포격을 시작하는 순간 북한군이 상륙작전을 알게 된다는 것도 문제였다. 인천에 상륙하려면 언제나 만조시에만 가능하기 때문에 북측은 9월 15일과 10월 11일, 그리고 11월 3일이 상륙 예정일이 되리라는 것쯤은 계산할 수 있다는 것도 문제였다. 여기에 만약 북한군이 기뢰를 대량으로 부설한다면 작전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수도 있었다.

 ▶ 끝없는 반대논리

 해병대 측도 상륙작전에 어려움이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상륙작전은 모래사장으로 감행하는 것이 정상적이지만 인천의 경우 마치 절벽 같은 4~5m 높이의 항구 안벽을 사다리로 기어올라야 했다. 상륙용 단정도 접안 가능한 시간이 하루 한두 차례밖에 없어서 적이 조직적으로 반격할 경우 ‘주저 앉은 오리’ 신세가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상륙 직후 바로 시가전이 벌어지는 지형이라는 점도 해병대에는 악몽이었다. 상륙작전 직후 병력이 집결하고 재편성을 하기 위해서는 넓은 공간이 있는 지역이 바람직했다. 하물며 공격자에게 불리하고 방어자에게 유리한 시가지 코앞에 상륙하는 것은 상륙작전의 기본을 어기는 것이었다. 해병대 측은 “인천은 상륙작전을 절대로 실시해서는 안 되는 지형적 요소를 모두 갖고 있다”는 극언까지 했다.

 콜린스 육참총장도 맥아더 장군을 지지하기 위해 이 회의에 참석한 것은 아니었다. 해병대 측과 마찬가지로 콜린스 육참총장은 상륙작전이 불가피하다면 군산 등 조금 더 후방의 안정적인 장소가 더 좋다고 생각했고, 이는 브래들리 합참의장의 생각이기도 했다.

 브래들리 합참의장과 콜린스 육참총장은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병력을 별도로 할당하면 미 8군이 맡고 있는 낙동강방어전이 지나치게 위험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해도 문제였다. 상륙에 성공해도 그 부대를 뒷받침할 후속 부대는 전혀 없었다.

일단 상륙한 후 위험한 상황에 빠질 경우 지원할 예비 병력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인천상륙작전을 강행할 경우 미군 수뇌부 입장에서는 사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더 이상의 카드가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 맥아더의 소신

 이 같은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맥아더 장군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담배 파이프를 물고 묵묵히 반대 발언을 듣고 있던 맥아더는 한 시간이 넘는 기나긴 연설로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맥아더 장군은 회의에서 거론된 이런 문제점이야말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는 절대적인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측이 미군들이 이렇게 불리한 상륙작전을 감행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할 것이고, 바로 그 때문에 기습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맥아더의 소신이었다.

 인천 이외에 군산 등 후방에 상륙하는 제안에 대해서는 크게 의미가 없는 작전이라고 일축했다. 군산에 상륙하는 것은 낙동강전선 같은 피아의 격전이 벌어지는 장소를 하나 더 만드는 것 정도의 의미밖에 없을 뿐이며 오직 인천에 상륙해야 북한군의 병참선을 차단, 낙동강에 있는 북한군 주력부대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것이 맥아더 장군의 확신에 찬 논리였다.

 맥아더의 확신에 찬 연설에 회의 참석자 중 상당수는 찬성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반대론자는 맥아더의 계획은 ‘과학이 아니라 도박’이라고 우려했다. 회의가 끝난 후에도 반대론자들은 맥아더 장군에 대한 설득을 계속했다. 하지만 맥아더 장군은 요지부동이었다.

* 자료제공 : 국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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