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MA(국가통수 및 군사기구)

김국헌 예비역 육군소장.전 국방부 군비통제관

  • 입력: 2010.08.15 20:26:53 / 수정: 2010.08.15 20:27:32
  • 기 사

민군관계를 연구하는 사람들, 그리고 한미군사협력관계에 관련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용어이다. National Command and Military Authorities에서, NCA는 국가통수부로서 대통령과 그 대리자로서의 국방부장관을 가리키며, NCMA는 합참을 포함한다. 통수체계는 헌정의 존립과 군사적 효율성을 위해 다 같이 명확해야 하며 효율적이어야 한다.

60년의 헌정역사상 우리의 국가통수부를 평가해보자. 6.25가 나던 날 이승만 대통령과 신성모 국방부장관의 창황망조한 모습은 참으로 딱하였다. 한국전쟁 전기간을 통하여 이승만 박사의 전쟁지도는 탁월하였다고 볼 수 있지만, 625 당일에 있어서 국가통수부로서는 낙제점이었다.

1961년 516당일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 총리, 현석호 국방부장관의 자취 역시 헌정을 지켜내려는 의지와 소명감이 전혀 없었다. 1979년 12.12당시 최규하 대통령과 노재현 국방부장관 역시 통수부로서는 낙제점이었다.

스페인 프랑코 총통 사후 민주화 과정에서 군부에 의한 쿠데타 기도가 있었을 때 카를로스 국왕은 나를 밟고 지나가라며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이처럼 스페인의 민주화는 국왕의 용기와 책임하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1987년 카를로스 국왕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을 국빈 방문하였다. 이는 프랑코 치하에서 유럽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스페인이 바야흐로 유럽의 문명세계에 복귀하였음을 알리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자신과에딘바러 공, 카를로스 국왕과 소피아 왕비가 모두 빅토리아 여왕의 피를 받았음을 상기시키며 각별한 사랑과 친근감을 표시하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대통령의 선택은 국민이 하는 것이니 논할 여지가 없고, 국방부장관의 선택은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이제 헌정의 위기를 초래할 일은 설마 없겠지만 군사적 효율성이라는 견지에서 국방부장관의 선택은 참으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 자신 일류의 전략가요 최고 전쟁지도자로서 손색이 없었으나, 그 이후 민간출신 대통령에게는 이런 자질과 경험을 기대할 수 없었다. 앞으로도 이런 경우와 상황은 비슷하리라 본다.

따라서 걸핏하면 문민국방부장관을 운위하는 것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맥나마라, 와인버거, 럼스펠드, 게이츠 장관 정도라면 좋으나, 애스핀 장관 같은 경우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는 하원 군사위원장을 다년간 지냈으나, 국방부장관으로서는 역불급이었다. 한미SCM에서 우리 권영해 장관에 끌려가던 모습이 선하다.

오늘날 우리의 전장환경은 대통령과 국방부장관, 합참의장이 거의 실시간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결심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이는 마치 보불전쟁때 힌덴부르크와 루덴돌프, 호프만이 거의 동시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하나의 목표와 개념으로 군을 운영하던 때와 같은 SYNCRONIZATION을 요구한다. 이는 동일한 전략사상, 논리, 개념, 용어를 가진 국가 및 군사통수기구(NCMA)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國防部長官의 選擇은 實로 爲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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