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항공대의 굴욕 (2)
기껏 도입한 해상초계기, 운용은 공군이?

<1967년 당포함 격침과 피랍된 해군 방송선>
또한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은 다량의 실패사례를 낳았는데, 그중 하나가 항공수색의 실패였다. 이 무장공비들은 총 3차에 걸쳐서 고무보트를 이용하여 침투하였는데, 그 중 1․2차 침투에서는 아예 탐지조차 하지 못하였고, 3차 침투때인 1968년 11월 2일 20시 35분 경 동해상을 초계중이던 해군 613함이 괴선박 2척을 레이더로 포착하고 항공기의 지원을 요청하였으나, 보고 지연으로 조명항공기(C-46)이 현지 상공에 출동하였을 때에는 이미 괴선박의 행방은 사라진 상태였다.
넓은 해상을 함정만으로 전부 통제하기에는 무리가 따랐기 때문에 해군 항공전력의 확보가 급선무였다. 거기다가 포클랜드 전쟁 등에서 해상작전헬기의 함정 격침능력이 입증됨에 따라서 해상초계기 만이 아닌 해상작전헬기, 지휘검열헬기의 도입도 주장되었다. 하지만 해군의 항공전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북한의 국지적인 도발은 급격하게 증가하였고, 한국 정부는 1968년부터 한미국방장관회의를 연례적으로 개최하기로 미국과 합의하고, 미국으로부터 특별군사원조 1억$을 지원받아서 군 장비 증강, 군수 산업 기반 조성, 공군력 강화등을 골자로 하는 “국군 현대화 계획”을 추진하게 된다. 이 가운데 1970년 7월의 제 3차 한미 국방장관 회의에서 미국은 S-2 해상초계기를 한국에 제공하기로 약속하였다. 하지만 함대항공대가 해체된 지 7년이 지난 상황이고 구 항공대 인원 가운데 조종사는 단지 2명만이 해군에 남아있던 해군 항공의 현실을 고려하여 S-2 해상초계기 1차 도입분 3대를 공군이 인수하도록 하였다. 이 결정은 해군에게 해군항공대의 재 편청을 서두르도록 하는 촉매가 되었다.

<S-2 해상초계기는 도입초기 해군에 항공대가 없었기 때문에 공군에서 운용되었다.>
구체적으로는 해군 항공대 재창설을 위한 기본 정책 수립, 항공기 운용요원 양성 대책, 비행장건설, 항공기 운용 계획 등을 위한 해군본부 작전 참모부 작전처 “항공담단관”을 신설하였다. 1971년 1월 S-2 항공기의 한미 해공군 연합작전 교리를 개발하여 예하부대에 하달하였다.
1972년 2월에는 공군의 S-2 초계기의 부조종사를 해군 조종사로 하고 해군 전탐사와 음탐사를 레이더, ECM, 소노부이, MAD 조종사로 하여 공해군 합동 운용을 건의하는 동시에 인천특수경비해역에는 고도의 방어태세유지가 요구되기 때문에 지휘검열 및 긴급군수지원 업무를 수행할 OH-23 헬기 1대의 배치를 건의 하였다.
이에 7월 합동참모본부에서는 해상초계기(S-2) 합동운영위원회가 개최되어 해군 항공요원 59명을 9월 1일부터 공군 S-2 대대에 파견하여 해공 합동 운영에 합의하였고, 10월 기존 에 확보한 조종사 12명과 정비사 21명이 S-2 운용 교육을 받게 되었다.
1975년 7월 1일에는 국방부에서 해군의 항공작전능력이 충분히 확보되었다고 보고 공군에 S-2 항공기와 이에 따른 임무 일체를 1976년 1월 1일까지 해군으로 이관 및 인도를 완료하도록 하는 “S-2 항공기 이관지시”를 하달하였고, 이와는 별도로 8월 16일, 그간 추진해 온 S-2 해상 초계기 신규 구매 안에 대한 대통령 제가가 났다.

<도입된지 5년 만에 해군 소속이 된 S-2 해상초계기>
이어서 1976년 1월 7일에는 공군의 S-2 해상초계기 7대(S-2A 2대 S-2F 5대)를 인수하고, 미해군이 도태시킨 해상초계기를 21대 도입하여 해군에는 한 해 동안 총 28대의 해상초계기가 도입되었다. 1976년 8월 23일에는 1차분 S-2E 12대가 9월 20일에는 2차분 S-2C 1대가 11월 19일에는 3차분 S-2E 8대가 각각 도착하였다.

하지만 최초로 확보된 해상초계기였던 S-2는 최초이기도 하고 낡은 중고이기도 했던 만큼 전력화 초기에 대량의 손실이 발생하였다. 공군역시 70~71년 어간에 총 8대를 인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해군에게 전달할 때는 7대 밖에 남아있지 않았으며, 해군은 훨씬 더 많은 량을 잃어버렸다.

S-2A 2대와 S-2F 5대를 전달 받은 첫해인 1976년에 만 해도 5월 25일 S-2A 1대가 추락하였고, 11월 10일에는 S-2F 2대가 해체되었으며, 남은 것 중 S-2A 1기와 S-2F 1기도 1978년 12월 31일까지 퇴역하였다. 공군에서 인수한 S-2 중 남은 S-2F 2기는 1981년 3월 31일 도태함에 따라서 초기에 군사원조를 통해서 도입된 항공기들은 전량 도태하였다.
해군에 의해서 도입된 S-2C/E 21대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이 항공기들은 추가 도입으로 보충을 하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1982년 1월 18일에는 이미 2기가 노후 되어 도태되었으며, 9월 12일에 사고로 1대가 추락하였는데 이를 보충하기 위해서 S-2E 2기가 추가 도입되었다. 따라서 한국의 해상초계기는 1970년에서 1982년까지 13년에 걸쳐서 31대가 도입되었지만, 오랫동안 대공표적예인기인 S-2C 1대와 해상초계기인 S-2E 19대의 20대로 구성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