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항공대의 굴욕 (1)

김기정

  • 입력: 2010.07.27 21:33:08 / 수정: 2010.07.29 03:24:03
  • 기 사

재주는 해군이 부리고 항공대는 해경이 챙겨가고

해군은 한국전쟁 당시인 1951년에 진해 해군 공창에 해방전 일본 항공창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기술문관 14명을 주축으로 항공기 제작 담당조직인 “항공반”을 창설하였다. 그리고 불시착하여 폐기된 미 육군의 항공기를 수거 및 자체 개조하여 해군 제 1호기인 해취호를 1951년 8월 15일 전력화하였으나, 이 해취호는 안타깝게도 같은 해 11월 22일 사고로 추락하면서 유명무실해졌다. 

 

<해군 최초의 항공기 해취호>

 

1953년 10월 20일에는 장교 1명과 기술문관 27명으로 항공반을 재정비하였는데, 70여평의 창고를 개조하여 항공기 제작공장으로 만들었다. 항공반은 해군내 비편제 조직이었으나, 1956년 1월 26일 해군과학연구소 제1연구소 항공과로 승격되면서 정식으로 편제되기 전까지 해취호, 서해호(SX-1) 등의 항공기를 제작하였다.

1954년 전력화된 서해호는 1951년 해취호를 잃은 해군에게는 근 3년 만에 다시 갖게 된 항공기였다. 물론 이 서해호도 1년 만에 부식으로 해체할 수밖에 없었지만, 한국함대사령부내에 건공반을 창설하고, 다시 항공참모실, 항공과로 개편 되는 등 항공기 제작에 대한 열의를 잊지 않으면서 육공군 위탁교육을 통해서 조종사 및 정비사를 양성하였다.

그리고 1957년 3월 전력화된 제해호(SX-3)를 기반으로 1957년 10월 12일 함대항공대를 정식 발족하면서 해군은 항공기에 대한 설계. 연구, 제작을 담당하는 조직이 아닌 항공기를 전력으로 운용하는 조직을 확보하게 되었다. 함대항공대의 지휘관으로는 조경연 중령이 임명되었는데, 이는 함대항공대가 해체될 때 까지 유지되었다. 이후 57년에서 58년까지 1년간 총 5대의 항공기를 확보하였으며, 부대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서 부대의 위치를 해군 사관학교 비행장에서 진해 덕산 비행장으로 이전하였다.

초창기 자체 제작 항공기 현황

항공기 명칭

제작년도

비고

해취호

1951년 8월

1951년 11월 추락

서해호(SX-1)

1954년 1월

1955년 2월 부식해체

제해호(SX-3)

1957년 3월

1961년 2월 해경이양

1001호기(L-19)

1958년 4월

1961년 2월 해경이양

1002호기(L-19)

1958년 10월

1961년 2월 해경이양

1003호기(L-19)

1958년 10월

1961년 2월 해경이양

1004호기(SX-5)

1958년 10월

1961년 2월 해경이양

하지만 함대 항공대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함대항공대가 보유하고 있던 항공기들은 미군사원조단의 승인을 얻지 않고 제작한 것이어서 부품 조달 및 후속 군수지원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으며, 때문에 부품들도 비공식루트로 공급받아야 했었고, 그나마도 원활하지 않아서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었다.

더욱이 항공기의 연료나 엔진 등 미군사원조품을 비공식적으로 유용하여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 발각되었다. 때문에 1962년 10월 미군에서 운영비 문제로 해군항공대의 존속을 반대하였고, 미군사원조단은 함대항공대에 대한 음성적인 군수지원도 규제하여 함대항공대의 항공기들은 운항이 불가능해졌다.

결국 1961년 2월 23일 해군이 자체적으로 제작한 해취호, 서해호(SX-1), SX-2등 5대의 항공기 전량은 해경에 이관되었고 운용하고 있던 일부 인원들 역시 해군을 전역하여 해경으로 가게 되었다. 1963년 3월 1일에는 함대항공대는 해체가 해체되어 1970년대가 될 때까지 해군은 한 대의 항공기도 보유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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